전 담쟁이 넝쿨을 참 좋아합니다.
식물과 건물이 함께 살아 숨쉬는 것 같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고등학교때 처음 수업받았던 건물이 60년 훨씬 넘었었지요.
막 고등학생이 되고 설레였던 아이들이었지만
자신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지극히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이 너무 낡고 오래됐기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요.
딱 하나 맘에 들었던 건 담쟁이 넝쿨이 만발했었다는 것!
창을 열고 손만 뻗으면 담쟁이가 손에 닿을 정도로
온통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거든요.
겨울엔 바람이 숭숭 들어올 정도로 춥고
세로로 쭉 당겨서 올리고 내려야 했던 일본식 창문은 빡빡하기 그지없었으며
여름엔 뚫고 들어오는 열기를 막지 못해서 찜통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엔 싫어했던 아이들은 점차 건물에 적응하면서
애정이 새록새록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초현대식 건물의 미끈하지만 차가운 공간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세월로 누적된 가치를
은연 중에 모두들 알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60년 넘은 그 건물에서 마지막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최고로 운이 좋은 학년이었습니다.
1년동안 그 건물에서 공부한 후 다른 새 건물의 교실로 옮겨가게 됐고
무슨 공사가 시작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참 수업을 받던 중 갑자기 우당탕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들은 얼어붙고 말았지요.
눈 앞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근했던 담쟁이 넝쿨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1년간 우리가 함께 생활했던 공간은...
아니, 60년간의 추억들이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습니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도 들렸지요.
저도 가슴이 많이 아리고 답답해서
쉬는 시간에 몇몇이서 건물의 흩어진 빨간 벽돌 조각을
주워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 건물은 순식간에 올라갔지만
쓸쓸함과 허무함은 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친구를 잃은 듯한 공허함...
옛건물을 한순간에 밀어버리는 어른들의 무표정이
무자비하게까지 느껴졌던 시간이었지요.
손에 닿았던 살아 숨쉬는 담쟁이 잎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실제로 담쟁이는 건물에 악영향을 준다고 해요.
그래서 담쟁이로 유명했던 연세대학교에서는
모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시에 다 걷어내 제거했던 작업을 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쟁이가 있는 건물은
생명력과 기나긴 시간을 동시에 말해주며
보는 순간, 건물에 애정을 갖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의 담쟁이가 만발하게 되면
또 한번 사진 찍으러 와야 겠습니다.
그리고 담쟁이를 쓰다듬으며 고딩 시절 뛰어놀던 건물을 추억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