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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여행
글쓴이:행복가득   자동점프날짜 2021-09-28 (화) 10:34 오늘조회수: 1464 날짜:21.09.28(화)10:34:58   https://www.1004ya.net/b300//331

남편이 퇴직을 하고 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퇴직하게 된 과정이 솔직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독단적이면서도 빠르게 이루어졌는데요.

 

나이로 보나 회사에서의 역할로 보나 

몇년 남지 않은 정년을 채우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음에도

처음 겪어보는 위태로운 코로나 시국에 한치 앞도 모를 불안한 상황이 피부로 와 닿는 저로서는 

남편의 날벼락 같은 퇴직이 실로 무책임하고 원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지요.

 

게다가 시댁분들이 오냐오냐하면서 그 선택을 부채질한 정황이 보였고

저 혼자만 왕따 시키고 진행된 데 대해 

많은 소외감과 울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퇴직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던 건 맞지만

설마 실제로 관둘까? 하며 온전히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거든요.

확실히 결정한 건 남편이 누나를 만나고 온 직후였던것 같아요.

 

한동안 울컥하는 마음을 어쩌질 못해서 감정 정리가 잘되질 않더라구요.

도대체 앞으로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우리가 적은 나이가 아닌데 우리 중 누군가가 혹은 가족 중 누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다달이 받는 연금이 삭감되기라도 한다면...

예기치 못한 경제적 변수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머릿속에 갖은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심적으로 복잡하고 힘겨운 날이 계속됐습니다.

 

그랬다가 아주버님을 통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알수 있었는데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이대로 가다가는 본인이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하네요.

 

남편의 업무 중 하나가 회사에서 더 이상 필요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서

그 부분을 통보하고 협상하는 일이었다고 해요.

자신보다 연세가 훨씬 많고 오래 같이 근무해와서 

정이 많이 든 형님들에게 퇴사해줄 것을 통보하는 일은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을 꿀 정도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서라도 한번 재고해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차마 바라보지 못할만큼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엄연히 따지면 본인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느끼는 남편의 성격이라면

능히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휘두르는 칼의 힘을 즐기는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극히 일부겠지만요ㅋ)

차라리 칼을 던져 버릴 지언정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쪽을 택한 남편에 대해서

측은함과 이해, 그리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잘관뒀다면서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냐며 힘을 실어주었지요.

 

회사 다니느라 그동안 못했던 것들 다 하고 푹 쉬고 여행도 맘껏 다니라구 말해줬는데

드디어 남편 홀로 비행기 타고 제주도 여행을 떠났네요.

전 강아지가 아파서 못갔는데 이 기회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오롯이 혼자만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편 혼자 보내서 엉뚱한 짓 하면 어떡하냐며 형님이 자꾸 잔소리 하시는데요ㅋ

만약에 본인이 그러길 원한다면 옆에 따라다닌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ㅋ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어떻게 사람의 마음까지 억지로 붙잡아서 옆에 앉혀놓겠나요

서로가 서로를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서로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동반자일 뿐

관여할 수도, 억압할 수도, 대신 살아줄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잖아요.

 

처음에 남편이 회사 관두고 모든 물품을 정리해서 집에 들고 들어올 때

당일 아침에도 미리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처구니 없는 벙찐 상태로 멘붕이 됐었지요.

그 이후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철학자 강신주님이 방송에 나와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20대 딸이 정년 퇴임한 아버지에 관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질문을 했는데요.

갑자기 초라해보이고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는 모습에 당황스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강신주님은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로 "저는 님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라며 정곡을 찔렀지요.

딸의 서운하면서도 놀라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요.

 

자세한 워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라는 것이었지요.

'여전히 아버지가 나가서 돈을 벌고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걸 아버지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포장하고 있는 가식을 인정하라,

진짜 사랑이란 건 본인이 뭔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비로소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

이제 본인이 아버지에게 베풀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지금부터 아버지를 알아가면서 새롭게 시작하세요'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받을 때만 좋은 관계이고 상대에게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할때 깨지는 관계라면

그것이 가족이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고 계속 이기심이 발동됐던 제 자신이

참 창피하게 여겨졌습니다.

 

제주도 도착 후 사진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네요.

혼자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봅니다.

고독과 고뇌 속에서 과거에 대한 정리가 끝나면

한 인간의 영혼이 한결 깊어지고 성장해서 돌아오리라 믿어봅니다.

때가 되어 집에 들어서면 기분좋은 환한 미소로 맞이해줘야 겠네요.

요리를 잘하진 못하지만 뭘 해줘야 할까 지금부터 고민해봐야겠습니다ㅎ

 

아참, 코로나 3천명 소식에 많이들 놀라셨었죠?

저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는데요.

그래두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에 안도감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더 긍정적인건 백신 접종자가 늘어난 덕분에

위중증인 분들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현상인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모두들 자나깨나 코로나 조심하시고 

점점 서늘해지는 날씨에 늘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래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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