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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딛고 꽃을 피우다

행복가득    점프날짜: 2021-04-09 (금) 12:40   조회수(총): 5690

얼마전 지하철에서 겪은 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자리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지요.

한 모자가 들어와 제 앞쪽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습니다.

 

외관상으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엄마와 아들...

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아니 그보다 더 어릴수도 있구요.

엄마는 몸집이 좀 거대하셨는데 집에서 그대로 나온 듯한 복장이며 부스스한 머리가

거의 남의 눈에 신경쓰지 않는 털털함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모자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어머니의 행동 때문이었지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죽겠다는 듯 눈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자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에서 괴이한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한 차 내에 혼자만 떠드는 괴상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데다가

아이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지는 액션이 지나치게 크고 오바스러우니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과히 곱지는 않았지요.

 

자신의 아이를 몇년 만에 만난것 같은 과한 행동과 소란스러움은

주변사람들에게는 이해 못할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전 아이의 기분이 궁금해 유심히 살펴봤는데

정작 아이는 엄마의 그런 행동들과 집중된 시선에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듯 보였지요.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듯 별 미동없이 엄마의 거친 손길을 꿋꿋하게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너무 심하다 싶을 때만 엄마의 팔을 잡아 내려놓으며 "하지 마~"라구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하네요.

 

한동안 모자를 관찰하는 시간이 지나고 점차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할 때쯤 

모자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엄마가 받는게 아니라 아이가 받네요. 

"여보세요"를 시작으로 아이의 크고 땡글땡글한 목소리가 

지하철 구석구석까지 뚫고 나갔습니다.

 

'어쩜 저 어린 애가 말도 잘하고 발음이 정확하네...

참 아이 잘키우셨다..아줌마 보기보단 의왼데?'

 

어린 시절에 본 '똑똑이 스머프' 가 연상되는 논리정연하고 똑부러진 통화가 계속 이어졌고

목소리가 워낙 커서 모두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지하철 내 사람들의 표정은 

점차 놀라움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예..예...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는 OO초등학교 O학년 O반 누구누구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고 말씀도 못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보호자입니다.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창 밖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모자를 구경거리로 바라봤던 것이 너무나 창피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 훌쩍 자라버린 아이를 마주하기가 한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보호하기 위한 일념으로 처절한 집중력과 노력을 통해 성장해버린 아이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역경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인데도 우리들은 늘 잊고 삽니다.

힘든 일은 피하려 하고 상처를 받아 아픈 것만을 강조할 뿐

이겨내기 위한 노력도, 그 상처를 딛고 성장하려는 목표의식조차 잘 갖지 않지요.

 

그에 비하면 저 아이는 어떠한가.

한탄도 원망도 없이 주어진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조막손을 꼬물거리며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네요.

 

엄마로 인해 쏟아지는 시선들 따윈 아이에겐 중요치 않습니다.

현재 가장 소중한 건 엄마이며 엄마가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집중하고

보호자로써의 역할을 톡톡이 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통화가 끝난 후에도 모자의 모습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보지 못했다는 쪽이 오히려 맞겠네요.

제 나이, 성격, 살아온 인생 모두가 총체적으로 뒤흔들리며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부끄러웠던 몇십분이었습니다.

잠깐동안 제가 겪었던 여운은 사라지지 않고 깊은 화두로 각인된 채

지금까지도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있네요.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아이인 것 같아요.

 

'상처 환영~ 역경 환영~'

그 아이를 떠올리며 앞으론 이런 좌우명도 붙여봐야겠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한 사람의 존재가 

주어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그 아이!

지금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엄마의 큰 나무일 것입니다.

저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했줬던 그 아이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강원도쪽에 사시는 분이 보내주신 사진인데요.

일전에 산불이 났을 때 화재로 그을린 나무들의 모습입니다.

상처 회복을 위해 붕대를 감아놓았는데 올해 작은 꽃을 피웠네요. 장하다 나무야!

지하철 아이와 묘하게도 연결되는 느낌이라 올려보았습니다.

 

여운이 남는 감동의 꽃사진 보시면서

모든 상처가 기분좋게 회복되는 힐링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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